떠나라,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주한미군 문제
남북 정상회담이 확실시되고 미북 정상회담의 가능성 역시 거론되는 가운데, 관측자 대부분은 핵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자기최면의 확산 속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비핵화”라는 단어를 되뇌고 있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북한사람들이 김정은이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김정은의 메뉴는 많고 다양하다. 구운 요리, 튀김 요리, 데친 요리에서 찜 요리까지 어떤 메뉴라도 김정은은 이미 그 조리법을 파악해 두었다.
많은 관측자가 북한의 메뉴에 오를 것으로 확신하는 것 중 하나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 요구다. 이는 포문을 여는 입장으로서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은 없고, 적어도 여러 사이드 메뉴 없이 주한미군 철수가 주요리로 남을 가능성은 없다. 핵심은 시기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마 누구도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미군 철수를 기대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철수 시기의 문제다. 지난 수십 년 사이 북한은 미군의 “즉각” 철수 요구에서 좀 더 미묘한 요구로 선회했고, 심지어 미군이 수년간 주둔하더라도 괘념치 않을 상황을 명료하게 밝히기도 했다.
새로운 이론. 2016년 김정은은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의 새로운 “전략적 지위”를 고려할 때, 한반도는 더이상 열강들의 놀이터가 아니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대신 북한은 마침내 대륙국가들(중국과 러시아)과 해양국가들(미국과 일본) 양측에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 자체로서의 열강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한반도가 지리적 조건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고, 항상 대국들 사이의 갈등 그 중심에 위치할 것임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듯 보인다. 아직은 모르나 곧 알게 될 수도 있는 사실은 이 이론이 어떻게 주요 플레이어들과의 관계를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며, 이는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이나 철수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이론을 중심으로 북한이 남북한 모두 모든 조약 관계를 종식하되 중국, 러시아, 일본을 상대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한 새로운 합의 하에서 한반도 내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하려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얼버무려라. 북한 사람들은 냉정한 실리주의자이며, 김정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미군 철수는 김정은에게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4년 후에 한국에 또 다른 보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며, 그 시점에서의 주한미군은 유용한 완충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게 매우 신뢰할 수 없는 일시적 동맹국이었고, 심지어 때로는 위협이 되기도 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 두 주변국에 대해 중요한 보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김정은 또한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는지, 또 동의한다면 김정은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그 목표를 추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이 이슈를 피해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현시점에서 김정은은 명시적으로 철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대신 차후에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어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북한 정책의 원동력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추구였다. 이를 달성한다는 것은 미군 주둔을 암묵적으로 수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남북 간 혹은 미북 간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균형 잡힌 의제, 즉 북한뿐 아니라 미국의 우려 사항도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미군 거취” 문제가 전체 의제에 포함되기를 원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당 사안의 고려”를 의제에 포함시키기를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단기간 내 미군 철수를 진지하게 요구한다거나, 더 중요하게는 이를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한반도에서 외세를 제한해야 한다는 이슈를 제기하고,이런 대외적 입장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위해, 북한은 결과적으로 미군 철수에 이르는 단계적 조치라는 이전 제안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일례로 1987년 북한은 한국과 북한의 무장병력 감축과 병행해 단계적 미군 철수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북한이 미군 철수라는 개념을 주요 긴장 완화 조치의 전제조건에서 그 조치의 결과로 보게 되었다는 사실, 즉 사안을 절차의 전면에서 후미로 옮겼다는 점이 그 시점에서 분명해졌으며 이는 여전히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1994년 8월이 되어서야 북한은 긴장 완화라는 틀 하에 1년 내 평화협정 및 3년 내 미군 철수를 포함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당시 북한의 입장에 실질적으로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주요 의제들이 북한 내부의 재가 절차를 거치려면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듯했다.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 합의(Agreed Framework)의 최종 협상 시 미군 철수 요구는 사라졌다.
조만간. 북한은 단순히 미군 주둔의 전격 수용을 선언하는 것조차도 반미선전에 꾸준히 길들여진 대중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그다지 좋은 전술이 아닐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그 결과로 북한은 “달콤한 작별인사”라는 접근법을 취할 수도 있는데, 이는 미군 주둔에 대해 개념적 종지부를 찍되 이를 희미하게 상상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례로 1992년 미북 고위급 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 북한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잠재적 위협을 다루려면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좋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을 놓고 미 대표단 내부적으로 논쟁이 불거졌는데, 대표단 내 일부는 세부적인 내용(일본의 위협을 가정하는 것)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명백하게, 거의 제약 없이 요청하고 있다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논점을 간과하기도 했다.
기대의 최대치. 북한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미군 주둔의 수용을 시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10월 발표된 미북 공동 코뮤니케(US-DPRK Joint Communique)와 관련하여 미국은 초안을 작성하여 2000년 1월 북측에 전달하였는데, 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미측은 태평양 지역에 중차대한 안보 이해관계를 가진 태평양 세력으로서 미국은 대한민국 및 일본과의 긴밀한 방위동맹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양국과의 현존 동맹 관계가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어구가 포함된 코뮤니케에 서명함으로써 북한은 암묵적으로 미군의 한국 주둔을 인정했음을 시사해 왔다. 초안을 검토한 북측은 이 수(手)에 웃음을 지었고, 아직 그러기에는 “시기상조”이니 해당 단락을 보류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시기상조였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김정은이 무엇을 제안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놀랄 만한 것임은 확신할 수 있다.
Translated by Jamie Wright.